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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의 종말? 위안화, 유로화, 암호화폐의 가능성

by 허당쉐이 2025. 9. 4.

미국 달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넘게 전 세계의 주된 기축통화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의 재편과 디지털 자산의 등장, 지정학적 긴장이 격화되며 그 패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과연 달러 이후의 시대가 올 수 있을까?

 

달러 패권의 종말? 위안화, 유로화, 암호화폐의 가능성

 

달러 패권의 구조와 균열: 왜 세계는 달러에 의존했으며, 지금 어떤 변화가 오는가?

미국 달러가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를 금에 고정시키고, 다른 모든 주요 통화를 달러에 연동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금 태환이 폐지된 이후에도, 달러는 여전히 국제 무역, 원자재 결제, 중앙은행 보유 외화 자산의 기준통화로 압도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왜 세계는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달러에 의존해 왔을까? 첫째는 미국 경제의 절대적 규모 때문이다. 국내총생산, 수출입 규모, 기술력, 자본시장 개방도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을 유지해 왔으며, 이에 따라 달러의 유동성과 신뢰도는 다른 어떤 통화보다 높았다. 둘째는 미국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과 안전성이다.

 

달러로 자산을 보유하면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고,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달러의 절대적 지위에도 최근 들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다. 일방적인 무역 제재, 금융 제재, 자산 동결 등은 달러 시스템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러시아의 외환 동결 조치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자산이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를 줬고, 이에 따라 대체통화나 새로운 결제망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달러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다.

 

현재 미국은 매년 수천조 원 규모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이를 국채 매입으로 떠안고 있다. 이로 인해 달러의 공급량이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화폐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수의 신흥국과 에너지 자원국들은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인 외환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중동, 아시아, 남미 국가들 사이에서는 비달러 결제 시스템 구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세계는 점차 달러 중심의 단극체제에서 다극적 금융 질서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위안화와 유로화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실제 현황과 한계

달러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존 통화는 중국의 위안화와 유럽연합의 유로화다. 두 통화 모두 경제 규모와 교역량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결제 시스템에도 일정 부분 편입돼 있다. 먼저 위안화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통화로,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활용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위안화 사용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일대일로(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한 위안화 대출, 디지털 위안화(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국제화 실험, 원유 등 원자재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유도 등이 있다. 또한,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에서 독립하기 위한 대체 금융망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직접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고, 중동 국가들과도 위안화 기반 원유 거래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일부 결실을 맺고 있으나, 여전히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완전히 전환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가장 큰 이유는 자본시장 개방 부족과 투명성 문제다.

 

중국 정부는 외환 통제와 금융 규제를 강력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환율 역시 시장보다는 정책의 영향력이 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위안화를 자유롭게 환전하고 운용하기 어려우며, 이는 위안화의 유통성과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또한 중국의 정치체계 특성상, 정책의 일관성과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다. 한편 유로화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국제통화이며,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신뢰도도 높다. 유로화는 외환 보유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결제 비중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유로화 역시 달러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유럽연합 내부의 경제 불균형과 정치적 분열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선진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같은 고부채 국가는 정책적 우선순위가 다르며, 유로화는 단일 통화이지만 재정정책은 각국에 분산돼 있다. 이는 위기 시 통합 대응이 어렵고, 통화 시스템의 탄력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결국 위안화와 유로화 모두 일정 부분 달러의 대안을 형성하고 있으나, 완전한 패권 전환까지는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대체통화로서의 위상은 성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질서 전체를 바꿀 만큼의 구조 전환은 아직 요원한 셈이다.

 

암호화폐의 부상: 탈중앙화 통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전통적인 국가 통화 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급격히 떠오른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바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중앙 정부나 중앙은행의 개입 없이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발행, 거래, 저장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통화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암호화폐의 가장 큰 장점은 탈중앙성이다. 특정 국가의 정치적 결정, 금리 조정, 통화량 조절 등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구나 인터넷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다는 접근성도 장점이다. 특히 경제 위기나 자산 통제 상황이 발생한 나라들(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터키 등)에서는 실제로 암호화폐가 일종의 ‘디지털 금’ 역할을 하며 안전자산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21년 이후 암호화폐 시장은 큰 변동을 겪었고, 2022년에는 거품 붕괴와 같은 급락 현상도 발생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사용자가 존재하고, 수백 조 원의 자금이 이 시장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발행에 자극을 주며, 정부 차원의 디지털 통화 도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기축통화나 국제결제통화로 기능하려면 여러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는 가격 안정성 확보다. 암호화폐는 가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실물거래에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둘째는 규제와 보안의 균형이다. 현재는 각국의 규제가 통일되지 않았고, 해킹, 사기, 탈세 등의 문제가 잦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셋째는 전 세계적 수용성이다. 암호화폐는 일부 국가에서는 금지되어 있고, 일부는 제도화되어 있으며, 아직까지는 세계 공통의 화폐로 보기엔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젊은 세대와 기술 친화적인 계층을 중심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신뢰와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기존의 통화 시스템을 대체한다기보다는, 기존 체제를 보완하거나 다양화하는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중앙집중형 금융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시대에, 암호화폐는 새로운 경제 주권의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요약하자면, 달러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지정학적 갈등, 통화 남발, 정치적 개입 등으로 인해 패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위안화와 유로화는 대안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시장 개방성, 정치적 통합성, 자산 유동성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 암호화폐는 아직 변동성과 제도 문제를 안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화폐 실험으로서 의미가 크다.